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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에 장재영 씨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를 빛내주는 고수를 널리 알리고 신인들의 발굴 육성 등 최고명고수 등용문,전국고수대회가 지난 21일 성공적 개최를 마쳤다. 한국국악협회 전북특별자치도지회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가 주최한 '제44회 전국고수대회' 영예의 대통령상인 대명고수부 대상이 장재영(37·경남 마산) 씨에게 돌아갔다. 대회는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전주 덕진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초등부, 중·고등부, 노인부, 신인부, 일반부, 명고부, 대명고수부 등 7개 부문에 111명이 참가했다. 이번 대회 역시 참가자가 직접 명창을 추첨해 진행됐다. 집계 방식은 유영대 전북도립국악원장(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이옥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신문범 부산예대 한국음악과 교수, 공병진 제26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박병준 제32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고정훈 제41회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등 심사위원 7명의 점수가 참가자 경연 후 현장에서 공개되는 전자 집계로 이뤄졌다. 여기에 대명고수부 심사에는 대회 전 참가 신청 의사를 밝힌 5명의 청중평가단도 함께해 공정성을 높였다. 명창으로는 이난초 국가문화재와 왕기석·김세미 전북특별자치도문화재를 비롯해 대통령상 수상자인 박미선·허애선·문영주·김찬미·임현빈·강민지·박가빈·박현영 등 총 12명의 명창이 무대에 올라 출전한 고수들의 북장단에 호흡을 맞췄다. 심사 결과 대통령상의 영예는 대명고수부에 도전장을 내밀어 586.8점을 받은 장재영 씨가 안았다. 이날 장 씨는 왕기석 명창의 소리에 맞춰 ‘범피중류’(진양조), ‘말을하라니 하오리다’(중모리), ‘고고천변’(중중모리) 등의 경연 무대를 선보였다. 명고부 대상은 김한샘(국무총리상), 일반부 대상은 변우진(문체부장관상), 신인부 대상은 이필재 씨, 노인부 대상은 정해숙 씨, 중·고등부 대상은 표지훈(교육부장관상) 군, 초등부 대상은 유다영 학생이 받았다. 올해 고수대회는 81명이 참가했던 지난해 고수대회에 비해 참가자 수는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현배 지회장은 "내년 대회는 전국에서 더 많은 고수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44회 전국고수대회 수상자 명단> △대명고수부 대상 장재영, 최우수상 김준영, 우수상 오흥민, 장려상 이재창 △명고부 대상 김한샘, 최우수상 이영채, 우수상 김영주, 장려상 윤영웅 △일반부 대상 변우진, 최우수상 정기훈, 우수상 조봉국, 장려상 김태린 △신인부 대상 이필재, 최우수상 이기숙, 우수상 김성규, 장려상 박서정 △노인부 대상 정해숙, 최우수상 김명종, 우수상 이완영, 장려상 박윤선 △중.고등부 대상 표지훈, 최우수상 김상아, 우수상 채준우, 장려상 오승민 △초등부 대상 유다영, 최우수상 조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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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고수를 가리는 제44회 전국고수대회, 전주에서 20일부터고수중의 명고수를 가리는 제44회 전국고수대회가 4월 20일과 21일 이틀간 전주 덕진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사)한국국악협회 전북특별자치도지회(지회장 손현배)가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대명고수부, 명고부, 일반부, 신인부, 노인부, 중.고등부, 초등부 등 7개의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우리 전통예술인 판소리에 꼭 필요한 고수인의 저변확대와 연구 계승발전 그리고 신인들을 발굴 육성하여 국악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최고 명고수의 등용문이 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출연 명창으로는 이난초 국가문화재, 왕기석, 김세미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를 포함, 대통령상을 수상한 박미선, 허애선, 문영주, 김찬미, 임현빈, 강민지, 박가빈, 박현영 등 총 12명의 명창들이 대회에 출전하는 고수들의 북 장단에 호흡을 맞춘다. 대명고수부 대통령상 수상자에게는 대통령상과 우승기, 상금 천만원을 수여하며, 그 외에도 명고부 대상은 국무총리상, 일반부 대상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중.고등부 대상은 교육부장관상 등이 상금과 함께 수여된다. 손현배 지회장은 "전국고수대회는 지난 43년간 수많은 명고수를 배출한 수준 높은 대회로서, 국내 최고의 명창들과 권위 있는 심사위원을 선정하여 참가자들의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접수기한은 4월 16일(화) 오후 5시까지이며, 참가신청서 등을 작성해 이메일(jbkm23s@naver.com) 또는, 팩스(063-261-4501)로 접수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주)국악신문 경연대회 게시판, 전북국악협회 사이트(https://cafe.daum.net/jbkm23)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문의전화는 063-262-4501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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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판소리 "춘향가 – 눈대목" 비교 시연회100년 전의 판소리 명창들이 부른 <춘향가>의 눈대목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가 펼쳐진다. ‘논문 한 편을 보고 듣는 시연회’라는 부제처럼 이 공연은 100년 전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들이 판소리를 어떻게 발전·변화시켰는지를 비교해 볼 목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춘향가> 중 대표적인 눈대목인 ‘기생점고’와 ‘어사장모 상봉’ 대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번 공연은 서편제의 시조로 추앙받는 명창 김창환의 아들이자 전설적인 명창 임방울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봉이(金鳳伊. 1878~1929. 전남 나주생)가 1915년 미국 빅타 레코드에 남긴 <춘향가> 중 ‘기생점고’가 109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또한 같은 해 이동백이 남긴 <춘향가> 중 ‘어사장모상봉’ 대목 전 곡이 사상 처음으로 공개되며, 1925년 중고제 명창 김창룡(金昌龍. 1872-1943. 근대 5명창. 충남 서천생)과 서도 명창 박월정(朴月庭. 1901~1960. 평남 강서생)이 일동 레코드에 각각 남긴 판소리 ‘기생점고’ 대목도 함께 공개된다. 김봉이(1878~1929)는 판소리 5명창으로 아버지 김창환을 사사했다. 1915년 미국빅타 레코드사가 김봉이의 <춘향가> 중 ‘이별가’와 ‘기생점고’를 녹음했는데, 그 중 ‘이별가’ 실물은 1993년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존재 여부가 확인된 적 있다. 반면 ‘기생점고’는 그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으나 이번에 존재 여부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김봉이의 판소리는 김창환에 비해 장식음이 많고 전조 현상이 보이는 등 서편제 초기 모습을 가진 판소리로 평가받는다. <수궁가> 인간문화재였던 명창 정광수는 김봉이의 소리를 ‘사람 소리가 아니라 귀신 소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편 같은 해 녹음된 이동백의 ‘어사장모상봉’ 대목은 그가 40대에 녹음한 <춘향가>의 유일한 자료로서, 박석티부터 장모가 좋아라고 대목까지 총 14분에 걸쳐 녹음되어 있다. 이 녹음 역시 이번에 처음으로 전모가 공개된다. 다른 유파의 ‘어사장모상봉’ 대목과 다른 점은 춘향이 옛집을 묘사하는 부분이 매우 섬세하고 장모 축원 대목이 길며, 장모가 좋아라고 대목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아니리가 적고 슬픈 대목의 목구성이 담담하게 표현되는 전형적인 중고제 소리를 보여준다. 김창룡과 박월정의 ‘기생점고’는 1925년 일동레코드에서 녹음되었는데, 김창룡의 ‘기생점고’는 아니리를 창으로 부르는 특징이 있으며, 서도소리꾼이면서 판소리 명창이기도 한 박월정 역시 ‘기생점고’를 아니리 없이 부른 공통점이 있다. 박월정은 조선 후기 대명창 정춘풍제를 잇고 있는 충남 홍성의 유공렬과도 친분이 있는 등 중고제를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꾼으로, 서도 시김새와 남도 창법을 절묘하게 배합해 판소리를 구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날 무대는 현재 판소리계에서 젊은 천재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있는 5명의 국악인이 꾸민다. 판소리 대통령상 수상자로 국가문화재 판소리 이수자 박은정(45)은 정정렬의 <춘향가>를 재현하며, 조상현 명창의 제자로 22년 KBS국악대경연 대상을 수상한, 국립창극단의 새내기 단원 이성현(28)은 이동백의 <춘향가>를 재현한다. 오랫동안 중고제 명창의 소리 재현에 힘쓰고 있는 이효덕(37)은 김봉이와 정정렬(丁貞烈. 1876~1938. 근대 5명창. 전북 익산생)의 <춘향가>를, 구례동편 판소리를 잇고 있는 차세대 소리꾼 박지수(22)는 김창룡의 <춘향가>와 김초향(金楚香. 1900~1983. 대구생)의 <춘향가>를 각각 재현한다. 판소리가 아닌 서도소리를 전공하며 현재 ‘타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라(36)는 박월정의 <춘향가> 중 ‘암행어사 출도’ 대목을 부른다. 고수는 송만갑 고수대회 명고부 장원을 차지한 김민서(44), 최재명(23) 명고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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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70) <br> 박정욱 명인의 '황해도 철물이굿' 춤사위철물이굿 ‘철물이굿’은 황해도 지역에서 정월이나 시월에 행하던 ‘재수굿’으로 집안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고 조상님께 감사 드리며 신께 제의를 올려 복을 비는 집안 굿으로, 1년 또는 3년에 한번, 2-3일에 걸쳐 행해졌다. ‘철물이 굿’은 총 스물 네거리 또는 열둘거리로 논다. 신을 청하는 소리 청배 만수받이, 신을 즐겁게 놀리는 춤, 늦은 거상, 거상타령. 복을 기원하는 공수, 아흔 아홉 방울의 상쇠소리, 해학적인 면이 많은 말명 거리와 불교 의식이 강한 칠성거리, 잡귀를 몰아내는 장수거리. 돈을 벌어들이는 대감놀이. 조상님들을 대접하는 조상거리 등, 볼거리가 풍성한 ‘재수굿’이다. 이은관의 직계제자인 박정욱 명창(서도소리보존회 이사장)이 2021년 3월28일 서도소리의 본향인 평안남도 ‘평안도 배뱅이굿’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평안도배뱅이굿은 평안도 고유의 음악과 무가의 성격이 잘 드러나며 무형문화재로서의 예술성과 기술성, 대표성 및 사회문화적 가치 등이 높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된다. 박정욱 보유자에 대해서는 전승 능력과 전승 환경, 전수 활동 기여도 등이 뛰어나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평안도배뱅이굿 보유자로 인정된다. 배뱅이굿은 이미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인 ‘서도소리’ 종목에 수심가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박정욱의 ‘철물이굿’은 황해도 출신 만신 이선비 선생으로부터 전수받은 무(武)의식과 놀이이며, 이선비 선생의 신 어머니이신 유씨 만신의 문서이고 ‘소놀음굿’은 장보배만신에게서 내려온 문서이다. '황해도 철물이굿'은 서해안 풍어제와 대비되는 굿으로 무형문화유산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한민족 문화유산이다. 박정욱 약력 평안남도무형문화재 제5호 평안도배뱅이굿 보유자 (사)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제57회 서도소리 정기발표회 개최 황해도철물이굿보존회 회장 2000년 국가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김정연/이은관 사사) 2014년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2호 재담소리 이수자(백영춘/이은주/안비취 사사) 1991년 제8회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대통령상) 수상 명창 이은관선생기념관 '낭월국악당' 관장 한국전통문화관 가례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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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 “유파별 보유자 인정해야 합니다!”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전승자 대표단 공동대표/김영임ㆍ김장순(경기민요 전승교육사) 저희는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전승자들입니다. 근 한 세기동안 대한민국의 대를 이어 전승되던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의 맥이 끊길 위기에 놓이게 되어 민요를 사랑하는 많은 전승자들과 국민들의 많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한숨소리가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문화재 관리국은 1975년 경기민요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소리속이 다르다는 점을 중시해 계보를 인정하였으며, 초대 경기민요 보유자로 묵계월(이경옥), 이은주(이윤란), 안비취(안복식) 세 분이 12잡가 4곡씩을 나누어 각각 보유자로 인정하였습니다.(묵계월: 적벽가 선유가 출인가 방물가), (이은주: 집장가 평양가 형장가 달거리), (안비취: 유산가 제비가 소춘향가 십장가) 문화재청은 2021~2023년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조사를 실시하여 최종 후보 김혜란(안비취 유파) 이호연(안비취 유파) 김장순(이은주 유파) 김영임(묵계월 유파)의 4명중 김장순(이은주 유파)와 김영임(묵계월 유파)을 제외시키고 2023년 5월 1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김혜란(안비취 유파)과 이호연(안비취 유파), 안비취 유파만 인정 예고하였습니다. 인정예고 기간에 아무런 문제나 이의 제기 없이 경과되어 문화재위원회에서 지정심의가 의결된다면 경기민요는 이춘희(안비취 유파), 김혜란(안비취 유파), 이호연(안비취 유파) 3명의 국가문화재 보유자가 안비취 유파로 천하통일 되고 묵계월 유파와 이은주 유파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사실상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 사안은 수천여 명의 경기민요 전승자와 수만 여명의 일반 전승자의 운명이 달리기도 한 사안입니다. 경기민요 전승자들은 몇 십년만에 찾아온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가 보유자 탄생을 자축하고 기뻐해야 할 터인데 잘못된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정책과 무형문화재 위원회의 결정에 아연실색하고 망연자실합니다. 두 후보가 인정 예고 된 안비취 유파 또한 자축은 고사하고 함께 동고동락해 온 경기민요 식구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안절부절 하고, 탈락한 묵계월/이은주 유파의 전승교육사들은 돌아가신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지 못한 죄책감으로 침통하고, 전승교육을 받던 이수자, 전수생들은 졸지에 가문을 잃고 고아가 되었다고 대성통곡하는 소리로 초상집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께서 2023년 5월 27일 부처님 오신날 조계사 축사에서 '정부도 전통 문화유산 보존 전승에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발언하셨습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유, 무형 문화재의 중요성을 깊이 인지하고 있다는 증명입니다. 끝으로, 우리의 귀중한 무형문화재인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중 묵계월류, 이은주류의 두 전형이 보존, 전승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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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의 재현과 특성본지 8월 13일자 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의 기고문 "동두천 이담농악, 경기북부에서 '국악의 메카'로 도약" 이라는 주제의 지면이 나간 후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담농악'은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기 북부지방의 양주시 문화권에 본류를 둔 농악으로, 이담풍물놀이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경기도 향토 지적 재산으로 선정되었다. '이담'은 1963년까지 양주에 속해 있는 동두천의 옛 고을 이름이다. 양주지역은 예부터 수많은 뜬쇄들이 배출된 농악의 고장이었으며 마을마다 농악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1945년 8·15광복 전후에 양주지역에서 개최한 각종 농악경진대회에서 이담농악은 많은 상을 차지하였다. 1960년대까지는 이담농악에 속하는 송내농악·안흥농악·광암농악·행단농악·하봉암농악 등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송내농악의 상쇠잡이 조임득, 행단농악의 이창인 등이 이담농악을 이끌었다. 근래에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었다. 1997년 문화원에서 ‘우리소리 한마당’이라는 제명으로 이담농악이 재현되었다. 2년후 1999년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동두천 지역민의 응원에 2007년에는 '동두천시립이담풍물단'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지 8년 후, 2017년 이담농악이 문화재 등록이 되고, 보유자가 지정된다. 김경수 단장은 전승이 희박해져 가는 동두천 '이담농악'을 재현하기 위해 힘쓴 공로와 타고난 예능을 인정받아서 동두천 무형문화재 3호 '이담농악' 보유자가 된다. 그런데 필자는 왜 타지에서 온 김경수 단장이 보유자가 되었을까라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동두천 '이담농악'이 무형문화유산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본다. 김단장의 이력을 살펴보니 일찌기 '국악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40여 년 동안 올곧이 '농악'에 몸 담고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1982년 '농악의 육군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민속촌농악단의 입단제의를 받아 그곳에서부터 전승활동을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 농악의 맥과 계보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김단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로 출발하여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 (사)대한명인회 선정 사물놀이 '채상설장구' 명인,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국악협회 경기도 지회 이사,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동두천지회 부지회장 등을 맡으면서 동두천 국악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악교육'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농악보존회를 조사하기 위해 매주 현지 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한달 간 인터뷰를 통해서 일제강점기는 물론 1945년 해방 전후 전국 각 지역 고을마다 마을마다 존재했던 전국 농악보존회 단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담농악의 시원과 역사성 Q. 안녕하세요. 지난 달 본지에 실린 김경수 단장님 기고문을 통해서 '농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집니다. 이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동두천 지역 농악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A. 때는 1994년, 지인을 통해서 동두천 지역 학교에서 풍물반 지도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이 예전에는 양주 지역이어서 양주농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히 수락을 하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왔습니다. 동두천여자상업고등학교 풍물반 지도를 하면서, 동두천 지역 농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지역 농악의 존재와 전승상황은 어떤지요 A. 당시만해도 동두천 지역은 북한계를 따라서 흐르는 내천과 농사짓는 땅이 풍부한 지역이라서, 논두렁 밭두렁 지나가면 농부님들이 흥얼거리면서 '논매기소리' 같은 민요가 생생히 살아있는 고장이었습니다. 즉, 수량이 풍부한 내천을 끼고 사는 고을이라서 집약적 농사를 짓는 마을이 많고 당연히 마을마다 농악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왕지사 동두천에 사는지라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농사를 짓는 마을을 중심으로 '농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여상 고적대는 전국에서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도하시는 풍물반은 어땠나요. A. 당시 동두천여상의 고적대와 풍물반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이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이담농악의 존재에 대해서 언제 알게 되어서 조사를 시작하셨나요? A.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풍물반 학생들이 동네 어르신에게서 지역 마을공동체가 주관하는 놀이(풍물)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동두천여상 풍물 담당 김흥래 선생님의 자문과 천재원 동장님의 고증에 따라 동두천 지역 농악의 발자취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Q. 인생 최고 청년기에 동두천에 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시는 것 같아요. A. 제가 동두천여상 풍물반을 지도하러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담농악을 만났고... 1999년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국악계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이담농악이 오늘의 저의 존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Q. '이담농악'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듣고 싶습니다. A. 동두천의 옛고을 지명이 이담입니다. 마을조사에서 농악의 존재와 꼭두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구심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1995년 '이담농악동호회'도 창립되자마자, 저는 문서와 흔적을 찾기 시작했죠. 당시 발족회 주축 인물은 송내농악을 이끌었던 상쇠 조임득, 이창인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주셨습니다. 동두천 지역 농악을 양주에서 최고의 민속놀이로 끌어올린 연희자들이셨습니다. Q.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이담농악은 1980년대에 들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부터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단체가 구성되었죠. 이때 30살을 갓 넘긴 어린 저에게 시작을 함께 한다는 명분을 주셨습니다. Q. 마을조사와 학계의 고증을 통해 이담농악의 재현작업이 시작되어 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역활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A. 재현 과정은 이론과 연희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죠. 저는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장병우(송내동)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뒷놀음을 구성하고, 전해지는 광복가락과 법고놀이를 체득하고 전래되어 오는 '농사풀이' 소리를 재현하여 이담농악의 몸집을 만들어 만들어 갔습니다. Q. 조사과정에서 특별하게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A. 故 장병우 선생님이십니다. 이담농악의 전신인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이십니다. 2016년 10월 12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소고놀이를 통해서 농사풀이 과정을 고증 받아서 정리를 했습니다. 전 과장의 재현과 무대화를 위해 각별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Q. 당시 일정 기간 단절된 이담농악의 재현을 위해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A.동두천 출신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지역 농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저를 처음엔 그 누구도 탐탁치 않게 바라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조사와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일이지요. 제가 묵묵히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시간나는 대로 지속적으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선 마을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당목 은행나무 밑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하고 기원을 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의 진심이 통했던지...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면서 지난 마을의 역사와 함께 마을굿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Q. 긴 세월 동안 힘든 고증과정을 거쳐서 언제 이담농악이 세상(동두천시)에 나왔나요? 즉 언제 어느 무대에서 첫 '재현'(Repretation)을 하셨나요? A. 드디어 10여 년에 걸친 고증작업 끝에 2017년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 첫번째 정기공연, 즉 무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모두 이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모두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Q. 그 마을이 바로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마을인가요? A. 네, 사당골(현 이담로 161) 마을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마을굿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지켜내려고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마을굿이 있는 곳에는 농악대가 존재합니다. Q. 사당골 마을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출발을 하나요? 특정 장소가 있나요. A. 마을 입구에 마을 수호신 당목이 우뚝 서 있습니다. 특히 이를 알리는 사당골 수호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마을 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마을제를 지냅니다. 행단제라고 합니다. 1,000년이나 된 당목 은행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하는 고유제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형식으로 구성된 놀이로 시작됩니다. Q.그렇다면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사당골에서 이루어지는 마을굿 행단제에서는 섬기는 대상이 있나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을 상징하는 설화나 전해오는 민담이 있지 않을까요? A.사당골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목과 함께 어유소 장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Q. 흥미롭습니다. 사당골을 지키는 은행나무가 기적이나 예시를 보여준 전설이 있나요. A. 조선 초기 어유소 장군이 어린시절부터 이 은행나무 밑에 단을 쌓고 학문과 무예를 익혔으며 은행나무와 대화를 주고받듯 은행나무를 모시면서 가까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한달 동안 은행나무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 조선 말기 고종 인산일 바로 직전에는 날씨가 맑고 화창한데 갑자기 마른 벼락이 치면서 한양 방면을 향해 자라고 있던 큰 가지가 저절로 꺾여 부러졌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어유소 장군과 은행나무을 기리는 ‘행단제’라는 마을굿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Q. 사당골 마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1150년대에는 온양 방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였으며 고려 의종시 상서령 벼슬을 한 방휘진이 1177년에 이 마을에 묻히고 이후에 사당이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1420년에는 평해 황씨, 1430년에는 충주 어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사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사당골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사당은 양지마을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는 사당골을 행단부락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부터는 양주군 동두천읍 지행 2리였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동두천시 내행동 5통이고, 현재는 불현동 23통으로 46세대 외에 아파트 단지가 구성되었고, 이후 마을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Q. 사당골 마을회 구성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고문에는 박양희, 회장에는 황석만,부회장은 이경훈,총무는 이창수,감사는 박현희, 운영위원으로 박은희, 박찬희, 박정호, 송요섭, 이상재, 이명애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면 황석만 회장님이 반겨주십니다. 이담농악보존회 후원회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마을제를 지내도 앞장서서 주축이 되는 마을 유지분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추세입니다. 아! 마을이 살아야 나라도 삽니다. Q. 지금도 사당골에는 마을제를 지내나요. A. 인터뷰 당일날에도 우연치 않게 은행나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박은희 어르신께서 은행나무 주변에 제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고 계신 것을 보고 다행이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구가 줄어서 매년 음력 10월1일에 마을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삼색 과일과 술을 올리며 간소하게 마을제를 지낸다고 박은희 어르신께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 활동이 번창하였으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연세가 고령화되면서 박은희 운영위원님 외 몇몇 어르신들만이 관심을 가지시는 실정이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주변 마을에서 농악이 성행했는 마을은? A. 이담농악의 전신인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 등이 조선후기부터 연행되었으며, 주변 지역 송내농악과 안흥농악 등 농악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특히 행단농악의 지행동, 송내농악의 송내동, 안흥농악의 동안동, 이 3개의 지역에서도 마을굿과 농악대 활동이 가장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도 마을굿이 내려오고 있었죠. 그러나 산업화가 급속히 발전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농사보다는 보산동 상가와 주변 골목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문화가 조성되어 전국에서 외지 사람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었죠. 최근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동두천역 근처 상권이 발달하면서 점점 전통 민속문화같은 농악이 자취를 감추고 명맥 마저 희미해져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Q. 마을조사를 하시면서 이담농악 재현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A. 송내동에 사시는 장병우라는 분이십니다. 소고잽이이십니다. Q. 송내농악의 소고잽이셨던 故 장병우 선생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사당골 마을회 운영위원이신 박은희 어르신에 의하면, 송내동에 장병우라는 소고잽이가 있었고, 송내농악이 행단제를 지내고 나면 넓는 공터에서 난장을 틀고 농악놀이 등 다양한 풍장놀이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고 합니다. 그 중에 장병우 소고잽이가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계셨는데 안타깝게 금년 6월 18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12월 12일(토) 2시에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주관으로 무형문화재 연합회 공연에서 이담농악단원들과 장병우 선생님께 ’소고놀이‘ 농사풀이를 지도받고 선생님과 저와 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Q. 저도 작년에 이광수 선생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12일 참석했습니다. 장병우 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서 풍물을 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분의 유품 중 상모같은 거라도 보존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혹 남겨주신 거라도 있나요. A. 네, 다행히 상모와 의상을 저에게 주시고 가셨습니다. 몇 장의 사진이 남겨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곤합니다. 가신지 얼마 안되어선지 실감이 안납니다. 생각만 하면 그리워집니다. Q. 이담농악보존회는 언제 창단이 되었나요? A. 1990년 초반 이담농악을 연구하며 1995년에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단체가 구성되어 이담농악보존회를 창단하였습니다. 이담농악의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서 성신여대 지회와 을지로 지회 및 구미 지회, 동두천 관내에도 상패동, 송내동,걸산마을, 동두천시 평생학습관. 동두천문화원에서 이담농악 강좌, 등..... 활성화를 위해서 회원님들을 모시고 있으며 이담농악후원회 이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동두천 시민들에게 이담농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이담농악 각 과장의 구성은? A. 이담농악을 이끌어 가면서 재구성한 것은 광복가락을 입장과 퇴장할 때 치고있습니다. 고깔소고 농사풀이 과정을 故 장병우 선생님과 작년에 함께 공연하면서 보완하였습니다. 1)길놀이(광복가락) ⟶ 2)인사굿 ⟶ 3)원진 ⟶ 4) 벅구마당놀이 ⟶ 5)당산벌림 ⟶ 6) 멍석말이 ⟶ 7) 원진 ⟶ 8) 벅구놀이 ⟶ 9) 한줄벅구 ⟶ 10) 두줄벅구 ⟶ 11) 벅구 농사풀이(가래질,논가는 동작, 모판대기, 씨앗 뿌리기, 써래질, 모 짜고 심는동작, 애눈파기, 두벌논메기, 퇴비주기, 벼베기, 타작)로 전과장이 11과장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동작과 춤사위도 보여 주어야 하니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Q. 당시 문화재 지정 신청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2016년에 시 문화재 신청서를 넣을 당시에는 절차와 방식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막했습니다. 장구잽이로 학교에 출강하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던 실연자이라서 행정적인 문서화 작업이 저에게는 엄청 부담이 많았고 벅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지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신청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정도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담농악'의 광복장단과 태극상모.그리고 제금 편성 Q. 이담농악만이 갖고 있는 지역성을 상징하는 특징이 있나요? A. 하나는 '광복장단'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태극상모'입니다. ‘광복장단’은 이담농악에서만 쓰이는 가장 특색 있는 장단으로써 1945년 광복 전후 동두천 지역에서 길놀이를 할 때에 쓰이던 장단입니다. 말 그대로 ‘광복’ 이라는 의미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해방을 표현하는 장단이라고 봅니다. 외세에 의한 억압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흥을 더하고 신명을 표출할 때 쓰이던 장단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큰 경사스러운 날에는 반드시 ‘광복장단’을 썼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담농악 판제에 가장 특색 있는 장단이 되었습니다. 더한다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불교적 성향이 보입니다. 불교식 제례에서 스님들의 춤사위인 바라춤에서 쓰는 '바라'(제금)를 사용하여 편성이 이루어집니다. Q.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이 타 지역과 대비해서 이담만의 것인가요. 그렇다면 동두천 지역 농악대에서만 전해진다는 '광복가락'에 대해 궁금합니다. A. 동두천 송내동, 지행동, 동안동, 등 여러 지역에서 치던 가락입니다. 일제강점기 1940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가로 불린 광복군아리랑이 떠 오릅니다. 농민들이 광복을 기원하면서 '광복+농악'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복후에 광복군아리랑을 만들리가 없거든요. 이 용어의 발생을 194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담농악의 판제가 완성됩니다. Q. 다른 지역 가락의 용어는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A. 삼채장단, 덩덕쿵이, 자진모리장단 등등 다양합니다. Q. 광복가락을 듣고 싶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다른 지역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광복가락’의 기본 장단은 쇠가락 구음으로 ‘갱 무개갱 갱 무개갱 갱 갱 갱 무개갱’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장단은 '덩덕궁' 장단이라 볼 수 있죠. 광복장단은 긴 삼채굿 혹은 자진삼채굿과 비슷하나, 다른 점은 긴 삼채굿, 자진삼채굿의 경우에는 기본형과 반주형을 교대로 치지만 덩덕궁이의 경우에는 기본형에 구애됨이 없이 다채롭게 변주하여 리듬이 매우 생동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광복장단’ 역시 길놀이 때의 걸음걸이에 따라 장단의 속도와 장단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 이담농악대가 쓰는 태극상모도 독특합니다. 연유가 있나요. A. 이담은 다른 농악대와는 달리 농기(만장기, 깃발)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상모에도 태극문양을 그려넣습니다. 예전에 동두천에는 태극기와 태극문양이 아주 흔했습니다. ’동두천‘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남과 북이 갈리는 최전방 길로 통하는 교통의 도시 동두천, 전통과 달러가 공생하는 동두천(당시 세간에서 지나가는 개도 파란 달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했죠.)....거리에는 주한 미군 제7사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군들이 많았죠. 미군들을 상대하는 크럽이나 레스토랑 건물 입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흔하게 보입니다. 미군들이 주로 외출복으로 걸치는 카키색 항공점퍼나 모자에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수 놓아서 입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죠. 점퍼 뒤에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수놓아서 입을 정도입니다. 당시 중고등 학생들도 그런 미군들이 입던 군복을 구입해서 멋스럽게 걸치는 미리터리룩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도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게 되고, 태극상모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동두천 이담농악만이 태극 문양이 그려진 태극상모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담농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동두천, 광복장단, 태극상모를 연결해보니 동두천 백년사 중 민중사 일부가 고스란히 '이담농악'으로 직결된다. 일제강점기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광복장단(1940년초), 1950년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7사단이 주둔한 동두천은 외부 집단으로부터 정체성을 찾고자 해서 나온 태극문양(1960년 이후)은 지역성을 구현시키고자 나온 태극상모(2017년)로 연결된다. 김단장은 아직까지 타 지역에서 태극상모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통문화의 시대성이 발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제금을 쓰는 모습에서 불교적 성향이 엿보인다. 이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을 통해서 동두천 역사의 일부분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Q. 이담농악보존회 농악단 자랑을 하신다면? A.동두천 이담농악의 자랑은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라고 자부합니다. 전공자나 동호인분들이 구분없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동하고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역 유지이신 차유철 보존회장님을 중심으로 이담농악 후원 이사회가 구성되어서, 정신적으로 든든합니다. 동두천 관내에서 저명한 훌륭한 분들로서, 우리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앞서가는 '농악의 컨텐츠' 개발 연구 절실하다" Q.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으로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국악‘과 '이담농악'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십니까? A. 첫째, 가까운 의정부에는 회룡문화제가 있다. 공주의 백제문화제 등..... 동두천예술제를 더 키워서, 전통을 복원하고 'K-국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이 실린 ’이담문화제‘가 개최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져서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국악‘을 알려야 합니다. 특히 동두천은 일찌기 숭늉보다도 커피를 더 좋아하고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낯선 국악을 감상하기 위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죠. 둘째, 세계적 한류 바람을 타고 한류의 근간을 전통 민속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K-국악‘이나 ’K-뮤직’ 시대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에 동두천의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셋째,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국악협회가 주관하는 ‘동두천 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를 타악 부문, 민요 부문, 연희 부문 이렇게 3개 부문 학생부와 일반부, 명인부로 나누어서 개최를 하여 경기북부를 시작으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악대제전을 통해 동두천을 알리고 싶습니다. Q. 해외 공연은 언제부터 나가셨나요? 다녀 오신 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A. 1987년 남사당 사물놀이 예맥 활동을 시작으로 김덕수 명인 밑에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호주 등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동포사회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인도. 말레이 시아. 폴란드. 파라과이. 베네쥬엘라.멕시코. 보스니아. 칠레. 홍콩. 이라크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 민족음악을 알리는 기회가 주어졌죠.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다양한 컨텐츠가 열립니다.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수 있습니다. 많은 영감을 얻고 왔습니다. 특히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동포사회 청소년들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포들과 휘날레를 할때는 모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우리 공연에 대해서 아리랑으로 답해주는...그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동포들에게 농악을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 '농악' 을 주제로 한 전국 단위 행사는? A. 2018년 10월 전국 50여 개 지역 농악보존회가 총집합해서 난장을 틀고 광화문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조직위원장:윤영달) 판놀이길놀이(거리퍼레이드)를 할 때입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농악대들이 하늘 높이 만장기를 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난장을 틀때는 신명이 올라서 하늘로 용솓음쳤습니다. 전국 농악대를 이끄는 리더를 맡은 임웅수(경기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에 형제들(?)과 주고 받은 에너지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 행사를 열어주신 해태크라운제과 윤영달 회장님의 국악에 대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전 고인이 되신 주재연 예술감독님의 열정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악대 길놀이야말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컨텐츠라고 봅니다. 동두천예술제에도 시도하고 싶습니다. 길놀이는 길닦이를 통해 정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필자는 제1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부터 학술자문위원 소속 단체라서 매년 3일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농악대가 보여준 거리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 Q. 20여년 동안 동두천에서 이담농악단을 맡으시면서 제자 중 특별한 제자가 있는지요. A. 파란눈의 이담농악 전수자,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Basile Peuvion)입니다. 우리가 2015년 9월 프랑스 낭트페스티발에 초청 공연을 받고서,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사물놀이 교습을 열었는데, 그때 농악을 공부하러 온 재즈 드러머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음악교사로 활동하는데 2018년 여름 휴가를 받고 한국에 와서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서 동두천까지 와서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한달 동안 농악을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담농악단 하계, 동계 수련회 및 김경수 장구 두드림캠프에서 농악을 전수한 이래로, 해마다 2회에 걸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하계수련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농악과 재즈가 협연하는 실험적 무대도 만들었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섞이니까 상대는 물론 우리 농악도 빛을 발하더군요. Q. 외국에서 동두천까지 농악을 배우러 온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 소개해주세요. A. 재즈음악가인 그는 12세때 재즈드러머로 입문. 2012년 여수 국제 엑스포에서 공연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음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사물놀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장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추최한 ‘K-Vox voix coréenne 2015’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만큼 신명과 끼가 있는 친구입니다. 프랑스주문화원에서 이담농악을 배운후, 칠곡 세계사물놀이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악 타악곡 웃다리를 드럼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비나리, 진도아리랑, 사랑가를 연곡으로 부르고, 장구 솔로 연주를 선보였죠. 외국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과 재즈음악을 배합한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국내 국악대전에서 외국인 부문 최우수 수상하는가 하면, 자라섬 재즈패스티벌 참여하여 농악을 가미한 재즈 드럼 공연 등을 펼치는 등 활발한 국악 전도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에 빠져서 이광수 명인을 찾아가서 '비나리'도 배워서 무대에서도 불렀습니다. 휘날레에서는 늘 아리랑도 잘부릅니다. 현재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이담농악 및 한국 음악을 알리며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두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제자입니다. 벌써 보고 싶어지네요. Q. 단장님이 연구하시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A. 저는 지금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 6학기 논문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장은주 교수님의 논문지도하에 "대한민국 농악 용어 연구”란 제목으로 열심히 인터뷰를 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어 속에서 예인들의 생각과 시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전국에 있는 농악인들을 찾아가서, 국가문화재, 광역시문화재, 도문화재로 분류하여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농악에 대한 데이터가 국가기록 빅데이터 자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특히 아직 저에게는 벅찬 서양예술사, 예술기획과 행정. 한국예술사, ’예술과 사회‘같은 학문이 농악을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3년이나 된 코로나라는 비대면 시기에 주어진 시간을 다행히 공부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Q.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 예능보유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이 민족유산 '농악'을 물려주기 위해 지향해야 할 과제는? A.농악은 마을굿에서 출발한만큼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민족유산입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2009년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중국식 표현)이 향유하고 있는 농악을 ’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우리는 2014년에,,,안타까운 일이죠. 첫째, 180개국에 살고 있는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농악의 세계화‘를 펼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실험적 무대가 필요합니다. 일찌기 김덕수 선생님을 따라서 국외 공연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국내 무대와 국외 무대는 다릅니다. 청중의 시선에 맞추어야 합니다. 당시는 공연에만 집중하는지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공연 무대에서 연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국외에서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농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확장될 수 있도록 문화와 문화를 연결을 시켜주는 문화매개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사물놀이'(김덕수 명인)와 '판소리'(안숙선 명인)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고 주재연이라는 문화기획자에 의해 'K-국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둘째,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작업입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풍류대장, K-팦 등과 같은 대중문화가 넘쳐나면서 국악을 전공했던 세대들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경제적인 가치와 시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악도 이런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무대가 생긴다면 무한한 컨텐츠가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셋째,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농악이 '지속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계승발전이 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승환경 개선과 행정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농악은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야만 하는 지속가능성 있는 민족유산입니다. 다음세대에도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이라고 봅니다. 저의 연구는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악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구술작업을 통해 이담농악의 특성을 찾게 되었다. 광복장단과 태극상모, 그리고 '제금' 편성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을조사를 통해서 광복장단에 대한 민속학 및 음악적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아리랑연구자로서 광복가락을 듣고서 '광복군아리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940년을 전후해서 '광복'이라고 명명했던 가락을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서만 치던 장단이 아니고 양주농악을 계승해 온 이담농악 권역에서 많은 마을이 전승해 오고 있다. 시대성을 도입한 민중예술의 전승주체들이야말로 '창조적 계승'의 실체인 것이다. 태극상모의 출현과 이를 계승하는 이담농악은 자발적으로 지역성을 구현하려는 주체들의 성과라고 본다. 대내적으로는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과 태극기를 연결시켜볼 수 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무형문화유산 종목 중 지역명(지역+종목+보존회)을 달고 있는 전국단위 민속예술 종목 중 하나가 '농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만큼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대동놀이' 종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광화문 무대에서 전국 단위로 집합할 수 있었던 종목이 농악(2018년)과 아리랑(2019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지속가능성' 종목 중에서 아리랑, 농악이 2012년 2014년에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이때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부분이 바로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기능을 가진 종목'이라는 것이다. 즉 대동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담농악보존회는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3호 전승단체로써 위상을 확립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회 회원들과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목표로 원형을 복원하고 재현하여 이담농악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보호조례를 보면, "제53조의5(도무형문화재의 보호 및 육성)의 제1항에 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지정된 도 무형문화재의 전승·보전을 위해 전수교육비·장학금 등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승자들은 경제적 문제와 열악한 전승 환경에 내몰린 채 힘겹게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일수록 명맥 잇기를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무형문화 전승자들의 실상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전통연희축제 첫날은 김덕수 명인이 ‘신동 김덕수의 초연’ 둘째 날에는 연희풍류’, 고창농악보존회의 ‘고창농악 판굿’, 삼도농악’이 이어진다. 셋째 날에는 줄타기 공연인 ‘동두천 이담농악X여류줄꾼 서주향’ 공연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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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김천금릉빗내농악 하계전수 캠프김천금릉빗내농악 2019년 9월 2일 김천금릉빗내농악은 국가문화재 (제 11-7호)로 승격되었다. 대표적인 영남농악으로 경상도 특유의 쇠가락과 쇠놀음, 양손으로 치는 웅장한 대북놀음, 판굿(영풍굿·영산다드래기 등)에서 살펴지는 군사진굿의 특징 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무형문화재로서 예술성·기술성, 대표성, 사회문화적 가치 등이 높아 국가무형문화재 종목 지정되었다. 김천시 ‘금릉빗내농악’이 전승되어 오고있는 ‘빗내’는 개령면 광천2리의 옛 이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에 비켜 흐르는 내가 마을 앞을 흐르고 있으며 동네가 감천에 비스듬히 있다고 하여 ‘빗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빗내 농악은 옛 감문국의 ‘나랏제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빗신제(별신제)가 혼합하여 동제의 형태로 전승되었는데, 가락이 강렬하고 남성적이면서 전투적인 놀이 형태로 발전되었다. 오늘날 진굿이라고 하는 군사훈련과정을 12마당으로 구성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특징 1. 경상도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풍물굿이다. 2. 풍물굿에 군악(軍樂)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3. 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상쇠의 계보가 뚜렸한 것이 특징이다 4. 편성에 큰북(대북)이 장구앞에 서며, 큰북채 두 개를 들고 연주한다. 5. 가락이 변화무쌍하며 진풀이가 많다. 1. 목적 1) 하계 기간을 이용한 문화재를 경험해보는 캠프를 실현 한다. 2) 문화재 선생님들의 지도로 문화재를 알아가는 과정을 가진다. 3) 합숙 연습으로 개인기량 정진에 기여한다. 4) 파트별 기술 전수와 판채 전수를 실현한다. 5) 격이 없는 열린 전수를 실현한다. 2. 내용 1) 기 간 2022년 8월 3일 (수요일) ~ 8월 6일 (토요일) 2) 지 도 3. 참가대상 학생 (초, 중, 고) 일반 (일반, 대학생) 4. 장소 김천 대방연수원, 빗내농악전수관 5. 참가 비용 ◇ 20만원 (숙식비포함) 6. 전수 내용 * 본 프로그램은 날씨 및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8 일정 10. 신청방법 접수방법 이메일(E-mail) : urigori@naver.com 팩스 (FAX) : 054-434-3500 전수참여여비입금: 농협 355-0068-1338-83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김천금릉빗내농악 (참여단체 및 자신의 성명이 바로 표시되도록 입금) 기타문의: 054)434-4500 /담당 010-6317-4584, 010-3816-8479 신청서 제출 2022년 7월 30일까지 이메일과 팩스로만 신청받음 개인참가자는 개인란 작성 제출 단체는 단체 작성 및 제출 ※ 단, 초등학교 저학년 경우 부모님 동반 참석요망 ※ 4일 총참석이 아닌분도 접수 받습니다. 프로그램 운영 1. 코로나 사항에 맞춰 국가와 지방자치 대책과 보건대책에 맞게 운용합니다. 2 계획표대로 최대한 노력하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입소한 전수생 파악 후 프로그램을 전수생에 맞추어 진행합니다. 입소와 퇴소 입소는 2022년 8월 3일 수요일 오후 1시까지 입소하도록 합니다. 퇴소는 2022년 8월 6일 토요일 오후 3시경에 수료식후 수료증 받고 퇴소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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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이달(5월)의 추천 유물로‘어차御車’소개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은 ‘어차御車’를 5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정해 1일부터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로 온라인 공개한다. 어차는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재위 1907~1910년)과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1894~1966년)가 탔던 차다. 순종의 어차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사의 캐딜락 리무진이며, 순정효황후의 어차는 영국 다임러(DAIMLER)사가 제작한 리무진이다. 본래 창덕궁 어차고御車庫(옛 빈청)에 장기간 보관되어 있던 두 어차는 자연 부식에 의한 노후화, 부품 손실 등으로 인해 많은 부분 훼손되었다.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1997년부터 5년간의 수리·복원 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되었고,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두 어차 모두 7인승의 대형 리무진 차량으로, 목조로 된 마차 형태의 차체가 초기 자동차의 형태를 보여준다. 외부는 전통 기법인 옻칠로 도장하였다. 차문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무늬(이화문, 李花紋)의 금장이 장식되어 있고, 내부 공간도 금빛 이화문 비단으로 꾸몄다. 어차는 대한제국 황실의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대자료이자, 당시의 자동차 기술을 집약한 고급 리무진으로서 자동차 발달사에 있어 상징적인 유물이다. 두 어차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국가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별도의 예약이나 인원 제한 없이 국립고궁박물관을 방문하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로봇 해설사 ‘고북이’의 설명으로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동영상, 사진과 함께 풍부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으며, 인터랙티브(Interactive) 콘텐츠인 퀴즈도 즐겨볼 수 있다.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gogung.go.kr)과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에서 국·영문 자막과 함께 해설영상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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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국가문화재’가 ‘국가유산’ 된다정명(正名)은 혁명(革命)이다. 이름에 따라 대의명분을 바로잡아 실질을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60년 만에 ‘문화재(文化財)’라는 이름이 ‘국가유산(國家遺産)’으로 변경, 정명(定名)이 되었다. ‘문화재’의 탄생은 1950년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에서 쓴 용어를 1962년에 우리가 그대로 쓴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기본법’ 제정 등 관련 법령과 체제 정비가 이어지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외청인 ‘문화재청’이란 기관 명칭도 ‘국가유산청’으로 변경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유산에는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분류된다. 문화유산은 국보·보물·사적·민속유산을 포괄하며, 자연유산에는 천연기념물과 명승이 속한다. 무형유산은 기존 무형문화재 개념이다.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는 국가유산으로 변경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문화재라는 용어가 과거 유물의 재화적(財貨的) 성격이 강하고, 자연과 사람을 문화재로 부르는 불합리가 있다. 또한 일본이 쓰는 ‘문화재’와 변별할 필요가 있다.” 이제 아리랑의 경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란 격에 맞게 "국가유산 무형유산 아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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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전주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 고정훈씨판소리의 기본이 되는 고수인의 저변확대와 신인들의 발굴 육성 등 최고명고수 등용문을 위해 전주시와 (사)한국국악협회 전북도지회가 주최한 제41회 전국고수대회가 코로나19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대회전 방역 및 소독, 마스크 착용, 모든 방문자 개인별 신원확인, 체온측정, 일반관람객이 없는 무관중 대회로 참가자 및 관계자 100인 이하의 인원을 지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의자 배석으로 지난 24일(토)~ 25일(일) 2일간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경원동)에서 열렸다. 초.중등부,고등부,노인부,신인장년부,신인청년부,일반부,명고부,대명고수부등 총 8개 부분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110명이 참가해 열띤 경연이 펼쳐졌다. 이번 대회에서 대통령상 수상자는 고정훈(서울,39) 참가자로, 이난초 명창과 함께 호흡을 맞춰 판소리 여덟장단을 멋지고 조화롭게 잘 맞추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이번 대회는 전자집계로 진행하여 공정성과 투명성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집행부의 노력이 더없이 돋보였다. 심사위원 7명과 출연명창은 총15명으로, 대명고수부는 국가문화재 한분과 지방문화재 한분을 모셨고 명고부, 일반부 등은 지방문화재, 대통령상 수상자들을 모시고 진행하였다. 참가자수가 많은 관계로 첫날 예선 경연을 오후 8시 40분까지 진행하였고, 본선 대명고수부는 요강대로 15분으로 진행하여 고수장단의 진면목을 보게 되어 참가자, 심사위원, 명창, 타지역 관계자의 칭찬도 자자하였다. 비록 무관중이었으나 참가자 및 집행부의 철저한 방역지침과 뜨거운 열정으로 성황리에 마무리 하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 공정한 심사를 위해 부정부패 및 민원처리 담당을 두었으며, 내년 정식도입을 위해 처음으로 모의청중평가단 제도를 실시하였다. 또한 공연장내 암행어사제를 실시하였고, 전북국악협회 소덕임 지회장은 차기 대회는 전국에서 많은 고수 국악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대회 구상과 예산 증액에 특히 노력하겠다는 포부와 제41회 전국고수대회에 협조해 주신 김청만 심사위원장(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을 비롯하여, 심사위원님, 명창님, 모든 참가자, 사무국, 집행부, 임원, 회원, 행사 진행요원님들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대명고수부 = 대상 고정훈(서울), 최우수상 백현호(인천), 우수상 임용남(경기), 장려상 이충인(부산) △명고부 = 대상 박추우(전북), 최우수상 김정기(서울), 우수상 도경한(서울), 장려상 김한샘(서울) △일반부 = 대상 정동렬(경북), 최우수상 김광윤(전남), 우수상 이겨레(부산), 장려상 전정현(경남) △신인청년부 = 대상 김민주(경기), 최우수상 박주석(경기), 우수상 소준한(서울), 이소망(전북) △신인장년부 = 대상 이인숙(경남), 최우수상 김영숙(전남), 우수상 양승한(전북), 정희경(광주) △노인부 = 대상 이지연(광주), 최우수상 배광수(전남), 우수상 임근택(전남), 장려상 주명삼(전북) △고등부 = 대상 최진욱(경기), 최우수상 서하늘(대전), 우수상 배현영(전남), 장려상 장수영(전남) △초·중등부 = 대상 김현웅(경남), 최우수상 이지윤(광주), 우수상 강해솔(광주) △지도자상 = 장보영(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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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향교 대성전·명륜당, 산청단성향교 명륜당 국가문화재 ‘보물’된다밀양향교 대성전·명륜당, 산청단성향교 명륜당국가문화재 ‘보물’된다 - 조선시대 향교의 건축 형식·구조·기법 잘 보여줘 문화재적 가치 인정받아 경남 밀양과 산청에 소재하는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백미 ‘밀양향교 대성전’, ‘밀양향교 명륜당’과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예고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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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정읍전국농악명인대회 11월 07일 *변경● 상세일정 1. 11월 7일 : 동영상 심사 및 심사집계 (정읍시 "연지아트홀”) 2. 11월 9일 : 입상자 발표(아래에서 참고) -. 사.한국민속예술진흥원 – 농악명인대회 – 입상자 발표 -. 국악신문사 – 경연대회 – 수상소식 3. 11월 9일 ~ 11월 13일 18시까지 : 상금이 있는 입상자는 한국민속예술진흥원 홈페이지에서 본인에게 해당되는 상금영수증을 다운받아, 손글씨로작성 싸인(또는 도장) 후 스캔 또는 촬영하여 참가 신청했던 메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kfolkart@hanmail.net) (기일엄수 - 기한 내에 영수증 미제출시 상금은 지급되지 않습니다.) 4. 11월 14일 : 상금 계좌이체 (영수증 미제출자 제외) 5. 11월 16일 : 상장 우편발송(학생은 학교로, 일반인은 주소지로) ● 명 칭 : 제28회 정읍 전국농악명인대회 ● 일 시 : 2020년 11월 7일 (토) ● 장 소 : 정읍 "연지아트홀” ● 주 최 : 사) 한국민속예술진흥원 ● 대 상 : 전국 초.중.고 학생 및 청소년과 만 19세 이상 전국 일반남녀 ● 경연종목 – 경연시간은 진행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구 분 경연종목 경연시간 경 연 대 상 일 반 부 - 설장고(장구놀이) - 쇠놀이(부포놀이) - 소고놀이(꼬깔.채상) - 북놀이 - 열두발상모놀이 - 태평소 5분 이내 . 만19세 이상의 전국 일반 남녀 . 대학생 및 외국인 . 지방 및 국가문화재와 본 대회 종합대상 수상자는 제외 학 생 부 (초.중.고) 4분 이내 . 전국 초.중.고 학생 및 19세 미만의 청소년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각 구분경연 ) 풍 물 (학생부) (일반부) - 농악 - 사물 선반 - 사물 앉은반 - 두레풍장 15분 이내 6분 이내 4분 이내 10분 이내 . 4인(쇠.장고.징.북) 이상의 풍물단체 . 초.중등부 - 초등학교 중학교 4인 이상 풍물단체 . 고등부 - 고등학교 4인 이상 풍물단체 . 일반부 - 일반 4인 이상 풍물단체 참 고 ⊙ 구정놀이(일반부와 학생부) - 율동이 있는 선반 이어야하며, - 음반(음향)을 이용한 반주는 실격임. - 반드시 반주자를 대동하고 의상을 갖추어야 한다. (설장고는 반제외) ⊙ 풍 물 (단체) - 필수악기(쇠 장구 징 북) 4인 이상의 풍물놀이(농악.선반사물.앉은반사물.두레풍물 등) -선반과 앉은반 모두 가능함. ⊙ 개인놀이(일반부 학생부)와 풍물부문은 중복 출전 가능하나, 풍물부문 끼리는 중복출전 불가 ⊙ 풍물부문은 일반부와 학생부로 구분하고, 학생부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로 구분 경연함. ⊙ 학생부는 고등부에서 종목별 최고득점자가 종합결선 경연을 통하여 종합대상을 결정하나, 심사위원장의 추천을 통하여 중등부에서도 종합결선에 진출할 수 있다. ⊙ 종합대상은 일반부의 분야별 최고득점자간 결선경연으로 결정한다. ⊙ 본 경연대회는 "비대면 동영상 심사"로 진행함에 따라 별도의 결선경연 없이 단심제로 하며, 최고득점자에게 종합대상을 수여 한다. ● 심사회피제 - 참가자는 직접스승이나 8촌 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에는 해당 심사위원의 심사회피를 경연 전에 신청해야 한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고 수상을 한 후, 회피 신청사유가 있었음이 발견 될 시에는 주최 측은 수상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는 해당 상장. 장학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주최 측은 모든 참가자가 심사회피제를 수락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인정한다. ● 시상내역 :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성적이 부진할 경우 최고상이 생략될 수 있음. - 종합대상 : 농림부장관상 / 300만원 - 학생부종합대상 : 교육부장관상 / 100만원 구 분 상 격 훈 격 장 고 꽹과리 소고. 태평소 북.열두발 비 고 일반부 대 상 전북도지사상 1명/20만 1명/20만 1명/20만 60 최우수상 정읍시장상 1명/10만 1명/10만 1명/10만 30 우수상 정읍시의장상 1명/10만 1명/10만 1명/10만 30 장려상 대회장상 2명 2명 2명 고등부 대 상 전북교육감상 1명/10만 1명/10만 1명/10만 30 최우수상 정읍교육장상 1명/5만 1명/5만 1명/5만 15 우수상 대회장상 1명 1명 1명 15 장려상 본회이사장상 2명 2명 2명 중등부 대 상 전북교육감상 1명/10만 1명/10만 1명/10만 30 최우수상 정읍교육장상 1명/5만 1명/5만 1명/5만 15 우수상 대회장상 1명 1명 1명 15 장려상 본회이사장상 2명 2명 2명 초등부 대 상 전북교육감상 1명/10만 1명/10만 1명/10만 30 최우수상 정읍교육장상 1명/5만 1명/5만 1명/5만 15 우수상 대회장상 1명 1명 1명 15 장려상 본회이사장상 2명 2명 2명 일반부 (풍물) 상 격 훈 격 - 비고 대 상 전북지사상 1명 / 50만 50 최우수상 정읍시장상 1명 / 20만 20 우수상 정읍시의장상 1명 / 10만 10 장려상 본회이사장상 2명 학생부 (풍물) 상 격 훈 격 초중등부 고등부 비고 대 상 전북교육감상 1명 / 20만 1명 / 20만 40 최우수상 정읍교육장상 1명 / 10만 1명 / 10만 20 우수상 대회장상 1명 / 10만 1명 / 10만 20 장려상 본회이사장상 2명 2명 지도자상 도지사상 1 명 국회의원상 5 명 표 창 교육위원장상 2 명 문화체육관광윈원장상 2 명 ● 참가신청 ◎ 참가신청서 다운 – 다음"한국민속예술진흥원” 또는 "국악신문” ◎ 접수 : mail – kfolkart@hanmail.net / 반드시 한글파일 작성. 동영상과 함께 첨부 ◎ 접수확인 – 접수 익일 오전 11시까지 참가신청 메일로 접수확인 메일 회신함. ◎ 접수기간 – 2020년 10월 10일~ 11월 3일 18시까지 ◎ 참가비 없으며, 신청서에 기록사항 불 분명시 접수에서 배제함. ◎ 메일 접수시 제목은 "000부 채상소고 홍길동”으로 기록하고 신청서와 동영상을 함께 첨부할 것. 각각 별개로 접수 시는 접수 거부함. ● 동영상 제작 기준 1. 경연자 간 형평성을 고려하여 가급적 핸드폰을 이용하고, 2. 해상도 1920×1080(FHD), 파일은 MP4. MPEG 로 설정한다. 3. 카메라는 고정하고 경연자의 전신이 보여야 하며, 의상은 갖춰야 한다. 4. 무대조명과 소품을 사용하지 말고, 배경은 단순하고 거울이 없어야 하며, 반주자는 보이지 않도록 하고, 연주 음이 반주 음에 묻히지 않도록 한다. 5. 촬영 시작 시 참가대회명과 참가자 이름. 촬영일자를 A4 용지에 기입하여 첫 화면에 약 5초간 제시하면서 끈어짐 없이 이어서 촬영하여야 한다. 예시) 제28회 정읍전국농악명인대회 초등부 장구놀이 홍길동 2020년 10월 4일 제28회 정읍전국농악명인대회 일반부 채상소고 홍길동 2020년 10월 4일 제28회 정읍전국농악명인대회 초중등부 선반사물 홍길동 외 15명 2020년 10월 4일 6. 카메라가 경연자를 따라다니거나 크로즈업 등의 촬영기법 사용과 영상과 소리의 편집을 일체 금한다. 7. 상기 기준에 위반이 있을 경우 사전 검사로 접수에서 배제하거나 실격 처리하며, 제출한 영상에 대한 일체의 권한은 주최 측에서 관리하며, 만약의 시비에 대한 증거물로 1년간 보관하고 폐기(파일삭제)한다. 단, 우수상 입상작품은 본회 또는 본회 관련 기관 및 단체의 인터넷에 게시할 수 있으며, 상업 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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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한밭국악 전국대회 영예의 대통령상 / 황보영 씨한밭국악회(이사장 최윤희)가 주최하는 제13회 한밭국악전국대회가 31일 ~ 9월 1일에 대전 연정 국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한밭국악전국대회는 무용부문 대상에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특장 대회로 무용과 판소리, 기악, 풍물개인 등의 종목으로 나뉘어 개최된다. 참가 부문은 명무부와 일반부, 학생부 등이 개최됐다. 이날 영예의 대상은 황보영(우리춤 예술원 이사장)씨가 최종실 류 소고춤으로 수상했으며, 명무최우수상은 박덕상 씨가 일반부 종합대상은 손연주 씨(도살풀이)가 대상은 김도현 최경선 이명모에게 돌아갔다. 전국대회 중 유일하게 외국인부를 개최하는 등 우리 국악의 세계화와 전통춤 발굴을 위해 열리는 대전한밭전국대회는 무용인에게 최고의 영예와 또한 경연 후 인간국보 축하 공연을 주최하여 대전시민들에게는 최고의 무대을 선사한다. 이번 무대에도 이옥천 명창의 판소리와 정철호 명인의 고법, 최종실 명무의 소고춤, 최윤희 명무의 도살풀이 춤과 김문숙, 박연진, 안춘자 명무의 대궐무, 한정자 명무의 승전무 등이 펼쳐졌다. 이번 대회에도 200여개 팀, 370여명이 참가하여 지난해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이번 영예의 대통령상에 국가문화재 지정 종목인 승무, 살풀이, 태평무가 아닌 시도지정 종목인 달구벌 북춤이 수상해 화제를 낳고 있다. 달구벌 북춤으로 영예를 차지한 황보영(54·대구시 중구 남산동·사진)씨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감사합니다. 30여년 동안 취미로 춤을 췄지만 오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 참여하고 싶은 꿈이 생겨 공식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프로필이 저에게는 없기 때문에 남들이 인정하는 프로필을 만들고 있는 거죠.” 황보 씨는 정식 국악이나 무용을 전공하지 않는 아마추어 국악인으로 현재 출판·인쇄업을 하고 있다. 그는 전통춤이 좋아 30여년전 국악계에 입문, 그동안은 불우아동 및 지체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 공연 등과 같은 봉사활동으로 춤을 추다가 지난해부터 전국대회에 참가해 쟁쟁한 전문 국악인을 제치고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황보 씨는 지난해 9월 ‘진해 전국 국악대전`과 지난 6월 ‘대구 국악제`에서 전체 대상(문화체육관광부상)과 국무총리상을 각각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큰상을 받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고 했다. 한량무에 북장단을 조화시킨 북춤 독무를 선보여 심사위원들로부터 `색다르고 활력이 넘치며 한국적 흥과 혼이 담겨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황보 씨는 “북춤 독무의 경우 진도북춤을 제외하고 창작품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독창적인 북춤 독무 개발에 보다 많은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명무부 = ▲명무우수상= 서보경 ▲최우수상= 천춘자 이애숙 김인옥외 9 ▲우수상 손희경 강순자 황귀자 ◇일반부 = ▲최우수상 송윤아 김혜림 임지혜 이창현 ▲우수상 강윤지 김옥 마유라 최보근 ◇학생부 판소리 부문 ▲대상=문하람 송희아 박수연 최하늘 김건 ▲최우수상 =박현주 서예지 박지혜 박세연 임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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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한밭국악 전국대회 - 영예의 대통령상 / 김옥성 씨한밭국악회(이사장 최윤희)가 주최하는 제12회 한밭국악전국대회가 29일 ~ 30일에 대전 연정 국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한밭국악전국대회는 무용부문 대상에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특장 대회로 무용과 판소리, 기악, 풍물개인 등의 종목으로 나뉘어 개최된다. 참가 부문은 명무부와 일반부, 학생부 등이 있으며, 지난해부터 외국인부가 전국대회로 개최됐다. 이날 영예의 대상은 김옥성 씨가 이매방 류 살풀이 춤으로 수상했다. 외국인부를 개최하는 등 우리 국악의 세계화와 전통춤 발굴을 위해 열린 한밭전국대회는 무용인에게 최고의 영예와 대전시민들에게는 최고의 공연을 선사한다. 이번 인간국보 축하 공연에도 강선영 명무의 태평무와 송순섭 명인의 판소리, 이명희 명창의 남도민요, 최윤희 명무의 도살풀이 춤과 박순금 명창의 경기민요 등이 펼쳐졌다. 또한 이번 대회에도 250여개 팀, 320여명이 참가하여 지난해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이번 영예의 대통령상에 국가문화재 지정 종목인 살풀이 춤이 수상해 오랜만에 지정종목에서 영예을 안았다. 이매방 류 살풀이 춤으로 영예를 차지한 김옥성 씨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우선 기쁘고,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과 제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김옥성 씨는 오랜동안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해 왔으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과 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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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한밭국악 전국대회 영예의 대통령상 / 이경화 씨한밭에서 최고 춤꾼 잔치. 한밭국악회(이사장 최윤희)가 주최하는 제11회 한밭국악전국대회가 11일 ~ 12일에 대전 연정 국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한밭국악전국대회는 무용부문 대상에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특장 대회로 무용과 판소리, 기악, 풍물개인 등의 종목으로 나뉘어 개최된다. 참가 부문은 명무부와 일반부, 학생부 등이 있으며, 지난해부터 외국인부가 전국대회로 개최됐다. 이날 영예의 대상은 이경화(우리춤 예술원 이사장)씨가 최종실 류 소고춤으로 수상했으며 일반부 종합대상은 정경희 씨(도살풀이)가 외국인부는 최려령 씨(중국·판소리)에게 돌아갔다. 지난해부터 외국인부를 개최하는 등 우리 국악의 세계화와 전통춤 발굴을 위해 열린 한밭전국대회는 무용인에게 최고의 영예와 대전시민들에게는 최고의 공연을 선사한다. 이번 인간국보 축하 공연에도 조통달 명창의 판소리와 김무길 명인의 거문고 산조, 최윤희 명무의 도살풀이 춤과 박순금 명창의 경기민요, 대전시지정 웃다리농악 등이 펼쳐졌다. 또한 이번 대회에도 200여개 팀, 270여명이 참가하여 지난해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이번 영예의 대통령상에 국가문화재 지정 종목인 승무, 살풀이, 태평무가 아닌 비지정 종목인 소고춤이 수상해 국악계에 화제를 낳고 있다. 최종실 류 소고춤으로 영예를 차지한 이경화(우리춤 예술원 이사장) 씨에게 승무, 살풀이 춤이 아닌 소고춤을 가지고 경연에 출전하게 된 동기와 수상 소감을 묻자. “우선 기쁘고,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과 제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춤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한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게 많습니다. 특히 자유롭고, 밝은 정서를 담고 있는 춤이 많은 만큼 이번 저의 춤을 계기로 다양한 우리 춤이 무대에 올랐으면 합니다.” 이경화 씨는 계원예고 무용부장으로 25여년간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해 왔으며, 현재 중국 베이징(北京) 중앙민족대와 주중 한국문화홍보원 등에서 한국의 전통춤을 가르치고 있다. 어떤 계기로 중국에서 우리 춤을 가르치고 초빙교수로 가게 된 이유를 묻자. “한류 붐을 타고 중국인도 한국 전통춤에 대해 관심이 대단합니다. 북한에서는 매년 인민배우를 중국에 파견해 대학 무용과에서 북한 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북한 춤이 한국 춤의 전부로 아는데 비록 제 개인 자격이지만 중국에 우리 전통춤을 알리는 데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공연할 때 마지막 작품을 ‘대장금’의 주제가에 맞춰 했는데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더군요. 한국 춤 특강에는 중국의 초, 중, 고교 교사들이 우리 춤을 배우려는 열정이 매우 대단합니다.” 이 교수는 요즘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내년 한중 수교 15주년을 앞두고 한중 무용가가 합동 공연을 펼치는 ‘한중무용인의 밤’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과 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이며,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행사에서 최연소 안무가로 참가했으며 폐막식에서 열린 공연 ‘등불의 안녕’을 안무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행사에서는 ‘누리북’의 안무와 지도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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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68호 밀양백중놀이 문화예술교육사 공개모집무제 문서 직원채용공고 다운로드 국가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존회에서는 국공립 문화기반시설 문화예술교육사 활용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백중놀이 보존회에서 일할 직원을 모집합니다. 지원자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 음- 1.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소지자 2.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기획, 진행, 분석, 평가 및 교수 업무 가능자 기타우대조건 1.밀양백중놀이 공연가능자 -처 우 - 채용된 직원의 처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월 급여 1,500,000원(세전금액) 2. 주5일 근무(공연행사등에 특근으로 대치가능) 근무시간 9:00~18:00 휴게시간 12:00~13:00 3. 4대보험 가입 4. 채용계약서 채결(6월에서12월까지) 모집 시기는 6월9일까지 밀양백중놀이 보존회로 신청하시고 신청 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과, 기타자격증을 첨부 하시고 면접은 6월10일 밀양백중놀이 보존회에서 일괄하여 진행합니다. 밀양백중놀이 보존회 055-354-3767 보존회 사무차장 010-2876-7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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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23회 정읍전국농악명인대회 9월 19일무제 문서 .red{color:red; font-weight:bold;} *참가신청서를 열려면 '저장'버튼을 누르셔야 합니다 2015년 제23회 정읍전국농악명인대회 단체에게 상을 수여하는 농악경연대회는 기량이 출중 한 개인이 부각되지 못하여 사기진작에 아쉬움이 많아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여 개인의 숨은 끼와 기량을 과시하고 재능을 나누며 공유하는 흥 겨운 축제의 겨루기를 통하여, 숨은 재능을 발굴하고 우수상을 수여하여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농악의 계승 발전과 전승에 기여토록 한다. : 2015년 9월 19일(토) : 정읍시 “청소년수련관 공연장” : 사단법인 한국민속예술진흥원 : 사단법인 한국민속예술진흥원 명인부(일반부), 학생부,단체부(학생부,일반부) -명인부 : 만19세 이상의 전국 일반 남녀, 대학생 및 외국인.지방 및 국가문화재와 본 대회 종합대상 수상자는 제외 -학생부 : 전국 초.중.고 학생 및 19세 미만의 청소년,초.중등부와 고등부 구분 경연,미취학 아동은 유아부 분리 -단체부(일반,학생) : 2인 이상의 단일악기,4종(쇠.장고.징.북) 이상의 풍물놀이,학생부는 초.중등부와 고등부로 구분 경연하나, 대상은 종합으로 한다. 구 분 경연종목 경연시간 경연대상 명인부 (일반부) -설장고놀이 -부포놀이(쇠놀이) -소고놀이(꼬깔.채상) -북놀이 -열두발상모놀이 -태평소 7분 이내 만19세 이상의 전국 일반 남녀 대학생 및 외국인 지방 및 국가문화재와 본 대회 종합대상 수상자는 제외 학생부 6분 이내 전국 초.중.고 학생 및 19세 미만의 청소년 초.중등부와 고등부 구분 경연 미취학 아동은 유아부 분리 단체부 (학생부) (일반부) 7분 이내 2인 이상의 단일악기 4종(쇠.장고.징.북) 이상의 풍물놀이 학생부는 초.중등부와 고등부로 구분 경연하나, 대상은 종합으로 한다. 참 고 설장고를 젱외한 개인놀이는 반드시 반주자 대동해야하며, 의상을 갖추어야 한다. 명인부와 학생부는 율동이 있는 선반이어야 하고, 단체부문은 선반과 앉은반 모두 가능함. 개인부(명인부 학생부)와 단체부문 중복 출전 가능함 단체부의 농악은 20명 이상이며, 경연시간도 20분 이내로 한다. 단체부문은 일반부와 학생부로 구분하고, 학생부는 초.중등부와 고등부 구분경연함. ※설장고놀이 외는 반주자 대동 요함(의상 갖출 것) -접수기간 : 2015년 8월 10일부터 ~9월 15일까지 메일 접수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 -접수방법 : E-mail : legoso@hanmail.net *특별한 사유가 있을시 사전 상담 후 당일 접수 가능함 문의전화 063) 531-0080 / 010) 4654-0080 사)한국민속예술진흥원 없음 종합대상 : 국회의장상 / 200만원 명인부 종합대상 :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 100만원 구 분 장 고 꽹과리(쇠놀이) 북.소고 열두발.태평소 인 원 대 상 전라북도지사상 전라북도지사상 전라북도지사상 각1명 최우수상 정읍시장상 정읍시장상 정읍시장상 각1명 우 수 상 정읍시의회의장상 정읍시의회의장상 정읍시의회의장상 각1명 장 려 상 본회 이사장상 본회 이사장상 본회 이사장상 각 2명 학생부 구 분 장 고 꽹과리(쇠놀이) 북.소고 열두발.태평소 인 원 대 상 전라북도교육감상 전라북도교육감상 전라북도교육감상 초.중등/ 고등 각1명 최우수상 정읍시장상 정읍시장상 정읍시장상 초.중등/ 고등 각1명 우 수 상 정읍교육장상 정읍교육장상 정읍교육장상 초.중등/ 고등 각1명 장 려 상 본회 이사장상 본회 이사장상 본회 이사장상 초.중등/ 고등 각2명 단체부 구 분 초.중등부 고등부 일반부 인 원 대 상 전라북도 교육감상 전라북도지사상 각1명 최우수상 정읍시장상 정읍시장상 정읍시장상 각1명 우수상 정읍교육장상 정읍교육장상 정읍시의회의장상 각1명 장려상 본회 이사장상 본회 이사장상 본회 이사장상 각2명 * 경연성적 부진 시 최고상 시상을 생략할 수 있음 * 본 대회요강 및 시상내역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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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춤연구소 전통춤기획시리즈 4. “검무전(劍舞展) IV”1. 개요     • 공연명: “검무전 IV”     • 주최 주관: 김영희춤연구소     •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 일시: 2017년 10월 11(수) 저녁 8시     • 장소: 서울시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국악당     • 주요제작진:  연출 김영희   음악감독 유인상   영상 임승환        2.  “검무전 IV”의 공연 내용 및 기획 의도   김영희춤연구소가 검무전의 마지막 시리즈 '검무전IV'를 공연한다. 2012년부터 시작된 ‘검무전(劍舞展)’은 매 시리즈마다 기녀 검무, 무예 검무, 역사적 사건의 검무, 의례와 민속놀이 속의 검무 등을 주제로 이어졌고, 그간 26 프로그램의 검무를 무대에 올렸다.   전통 검무와 창작 검무까지 시도했으며, 작고한 예인들의 검무를 영상으로 감상하기도 했다. 2014년의 검무전은 17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이틀간 초청되어 큰 관심을 일으켰다.   올해의 ‘검무전 IV’는 우리 문화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는 ‘무속(巫俗)의 칼춤’이 주요 모티브이다. 베어내고 잘라낸다는 칼의 원초적 특성이 무속에도 그대로 의미부여되어서, 칼은 굿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무속에서 칼춤은 제액을 베어내고 막아내는 의미와 함께, 나라를 지켰던 장수(將帥)들이 신격화되면서 호국적 의미를 갖고 있다. 최영장군당굿(황해도 무형문화재 5호)의 서경욱 만신이 장군거리를, 용인할미성대동굿(용인시 민속문화재 1호)의 유성관 만신이 월도창검무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주목할 프로그램은 ‘진주팔검무’이다. 조선시대에 예향이며 색향이었던 경상도 진주 지방에서 추어지던 검무는 유명했으니, 다산 정약용이 진주 기생의 검무를 보고  「무검편증미인(舞劍篇贈美人)」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이 검무가 일제강점기 권번을 거쳐 1967년에 팔검무로 추며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후예들의 팔검무가 이번 '검무전 IV'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그 외 경기도 무형문화재 53호 (예능보유자 김근희)와 1960년대 국립무용단원으로 당시 검무의 대명사였던 한순옥(1932~ )의 를 양승미씨가 춘다. 또한 최승희의 영향을 받은 두 개의 검무도 올려진다. 한국전쟁 이전에 최승희의 제자였다가 월남한 故 전황(1927~2015)이 안무한 를 김지원(단국대 교수) 외 3인이 추며, 일본 조총련계 예술단체를 통해 배운 북한 검무를 재일동포 아리무용단이 이란 제목으로 공연한다.   김영희춤연구소는 2012년부터 ‘검무전’ 무대에 우리 춤의 역사 속에 등장한 다양한 검무들을 무대에 올렸다. 이를 통해 검무(劍舞)의 예술성과 다양성, 문화적 가치를 확인하고, 인문적으로 탐색하여 현재적 의미를 모색해 왔다.     2017년 10월 11일(수) 저녁 8시에 서울남산골한옥마을 내 남산국악당에 올려진다. (공연 및 티켓 문의 010-4526-0296) 3. 프로그램과 출연자   1) 검무 영상 / 연구소 제작       그림, 문헌, 사진으로 남아있는 이미지들을 엮어 검무의 역사를 보여준다.   2) 중 칼춤  / 서경욱(황해도 무형문화재 5호 예능보유자)       최영장군은 고려말 홍건적과 왜적을 막고 공을 세웠지만 개성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후 무속에서 인격신으로 정립되며, 전국에서 모셔지고 있다. 이 굿거리에서 추어지는 칼춤을 보여준다.   3)   / 경기검무보존회       한성준의 제자였던 고 강선영 선생에 의해 전승되고 재구성된 경기검무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53호로 지정되었다. 이 검무를 4인 검무로 감상한다.     4) 한순옥 안무 / 양승미        1960, 70년대에 국립무용단에서 활동한 한순옥의 검무는 큰 인기를 끌었었다. 최승희의 제자이기도 하며, 전통과 신무용 스타일이 섞여있는 검무이다.      5) 용인 할미성대동굿 중 / 유성관과 용인할미산대동굿보존회        할미성대동굿은 경기도 도당굿의 형태를 보이면서 풍물굿과 함께 마을 대동굿의 특성이 강하다. 이 굿거리 중에 추는 월도창검무를 선보인다.      6) 신무용 검무: 전황 안무   / 김지원 외 3인                 최승희의 제자로 한국전쟁 중에 월남한 전황은 최승희의 신무용 스타일로 장검무를 창작했다. 김백봉의 검무와 비교할 만한 신무용 검무이며, 이번 ‘검무전’에서 오랜만에 공연된다.    7)  신무용 검무: / 아리무용단         북한의 칼춤은 최승희가 이룩한 무용 유산 중 하나이다. 아리무용단은 조총련계 예술단체를 통해 북한의 검무를 습득했고, 북한의 검무 스타일을 역력히 보여줄 것이다.     8)   / 진주검무보존회          진주검무는 진주 지역에서 오래 전승되었고 진주권번의 예인들에 의해 1967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번 공연에서 8검무로 무대에 올려지며 검무의 저력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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